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뤼시앵 로랑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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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

뤼시앵 로랑은 프랑스의 축구 선수로, 1930년 FIFA 월드컵에서 월드컵 역사상 첫 골을 기록한 선수이다. 1928년 하계 올림픽 프랑스 대표팀에 포함되었으나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. CA 파리, FC 소쇼, 스타드 렌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, 제2차 세계 대전 중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. 프랑스 대표팀으로 10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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뤼시앵 로랑 - [인물]에 관한 문서
기본 정보
뤼시앵 로랑
본명뤼시앵 로랑
출생일1907년 12월 10일
출생지프랑스 생모르데포세
사망일2005년 4월 11일 (향년 97세)
사망지프랑스 브장송
신장1.60m
포지션인사이드 라이트
클럽 경력
유소년 클럽1921–1930: CA 파리
클럽1932–1933: 클럽 프랑시
1933–1934: CA 파리
1934–1935: FC 뮐루즈
1935–1936: FC 소쇼-몽벨리아르
1936–1937:
1937–1939: 스트라스부르
1939–1943: 툴루즈 FC
1943–1946: 브장송 RC
클럽 출장 (골)클럽 프랑시: 27 (10)
CA 파리: 27 (12)
FC 뮐루즈: 33 (10)
FC 소쇼-몽벨리아르: 8 (2)
: 33 (11)
스트라스부르: 29 (4)
브장송 RC: 1 (0)
국가대표 경력
국가대표팀프랑스
국가대표팀 연도1930–1935
국가대표팀 출장 (골)10 (2)
감독 경력
감독 연도1943-1947
감독 클럽브장송 RC
감독 연도1961
감독 클럽브장송 RC

2. 선수 경력

뤼시앵 로랑은 1930년 FIFA 월드컵에서 월드컵 역사상 첫 골을 기록한 선수로 유명하다.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10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.[1]

1934년 FIFA 월드컵에도 프랑스 대표팀에 포함되었지만,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.[1] 이후 (1937년까지)과 RC 스트라스부르 (1939년까지)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.[1]

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프랑스군에 입대, 포로 생활을 하다가 1943년 석방되었다. 이후 베상송에서 1946년까지 선수로 뛰다가 은퇴했다.[1]

2. 1. 초기 경력

뤼시앵 로랑은 파리 근교 발드마른의 생모르데포세에서 태어났다. 그는 축구 선수이자 프랑스 국가대표였으며, 193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한 장 로랑의 동생이었다.[1] 1928년 하계 올림픽 프랑스 대표팀에도 포함되었지만,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.[2]

1921년부터 1930년까지 파리 아틀레티크 클럽(CA 파리)에서 준프로 선수로 뛰었고, 이후 자동차 제조업체 푸조의 노동자 팀이었던 소쇼에 입단하여 고용되었다.[1] 그는 아마추어 선수였기 때문에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프랑스 축구 연맹으로부터 기본적인 보상만 받았다.[1]

2. 2. 1930년 FIFA 월드컵

뤼시앵 로랑은 아마추어 선수였기 때문에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프랑스 축구 연맹으로부터 기본적인 보상만 받고 프랑스 대표팀으로 참가했다.[1] 그는 소쇼에서 푸조 노동자로 일하면서 축구 선수 생활을 병행했다.[1]

1930년 7월 13일 몬테비데오의 포시토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전반 19분 발리슛으로 월드컵 역사상 첫 골을 기록했다.[3] 프랑스는 이 경기에서 4-1로 승리했지만, 아르헨티나칠레에 패하여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.[1] 로랑은 2차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칠레와의 3차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.[1]

그는 형인 장 로랑과 함께 제1회 월드컵 우루과이 대회 프랑스 대표팀 멤버로 선출되었다.

2. 3. 1934년 FIFA 월드컵

로랑은 1934년 월드컵 프랑스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지만,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.[1]

2. 4. 클럽 경력

뤼시앵 로랑은 파리 근교의 발드마른 생모르데포세에서 태어났다. 1921년부터 1930년까지 파리 아틀레티크 클럽에서 준프로 선수로 뛰었으며, 이후 자동차 제조업체 푸조의 노동자 팀이었던 소쇼에 입단하여 고용되었다.[1] 그는 아마추어 선수였기 때문에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프랑스 축구 연맹으로부터 기본적인 보상만 받았다.[1]

1934년 월드컵 이후 그는 으로 이적하여 1937년까지 뛰었고, 1939년까지 RC 스트라스부르에서 뛰었다.[1]

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프랑스군에 입대했지만, 작센에서 3년간 포로로 지내다가 1943년에 석방되었다. 이후 베상송에서 2년간 선수 생활을 한 후 1946년에 은퇴하였다.[1]

뤼시앵 로랑의 클럽 경력은 다음과 같다.

기간클럽
1921–1930CA 파리
1930–1932FC 소쇼
1932–1933클럽 프랑수아
1933–1934CA 파리
1934–1935FC 뮐루즈
1935–1936FC 소쇼
1936–1937스타드 렌
1937–1939RC 스트라스부르
1939–1943툴루즈 FC
1943–1946브장송 RC


2. 5. 국가대표팀 경력

뤼시앵 로랑은 파리 근교 발드마른 생모르데포세에서 태어났으며, 193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한 장 로랑의 동생이다.[1] 1928년 하계 올림픽 프랑스 대표팀에도 포함되었지만,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.[2]

1930년 FIFA 월드컵에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출전, 월드컵 역사상 첫 골을 기록했다.[3] 몬테비데오 포시토스 경기장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19분에 발리슛으로 득점, 프랑스는 4-1로 승리했다.[3] 이후 아르헨티나, 칠레에 연패하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고, 로랑은 부상으로 칠레전에 출전하지 못했다.[1]

1934년 FIFA 월드컵 프랑스 대표팀 명단에도 포함되었으나,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.[1] 로랑은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총 10경기에 출전, 2골을 기록했다.[1]

2. 5. 1.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

France score listed first프랑스어

번호날짜장소상대팀점수결과대회
1.1930년 7월 13일포시토스 경기장, 몬테비데오, 우루과이멕시코1–04–11930년 FIFA 월드컵
2.1931년 5월 14일스타드 올랭피크 이브 뒤 마노르, 콜롱브, 프랑스잉글랜드1–15–2친선 경기


3. 제2차 세계 대전 참전

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뤼시앵 로랑은 프랑스군에 소집되었으나, 독일군에 붙잡혀 3년간 포로 생활을 했다.[1] 1943년에 석방된 후 브장송에서 1946년까지 선수로 뛰다가 은퇴했다.[1]

4. 은퇴 이후

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프랑스군에 입대했지만, 독일군에 붙잡혀 3년간 포로 생활을 하였다.[1] 1943년에 석방된 후 베상송에서 1946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하여 트레이너 및 유소년 코치가 되었다.[1] 그는 1930년 프랑스 대표팀 선수 중 유일하게 프랑스가 자국에서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았으며,[1] 7년 후 베상송에서 9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.[1]

5. 수상 경력

구단대회기록
CA 파리쿠프 드 프랑스1928년 결승 진출
FC 소쇼푸조 컵1931년 우승


참조

[1] 뉴스 Obituary: Lucien Laurent https://www.theguard[...] The Guardian 2005-04-14
[2] 웹사이트 Lucien Laurent https://www.olympedi[...] 2021-09-15
[3] 뉴스 The World Cup's 1st goal scorer https://www.cbc.ca/s[...] CBC Sports 2009-11-13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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